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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기록된 우리 원씨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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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바위 작성일21-05-16 20:23 조회5,607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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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국역 증보문헌비고  50- 제계고11의 부록 씨족 5”

시조 원극유(元克猷)삼한 공신(三韓功臣)으로서 벼슬이 병부령(兵部令)이었다.아들 원징연(元徵演)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복야(僕射)였다.원징연의 8세손 원부(元傅)초명(初名)은 원공식(元公植)이었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중찬(中贊)을 지냈다. 시호가 문순공(文純公)이다.원부의 아들 원관(元瓘)초명(初名)은 원정(元貞)이었다.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찬성(贊成)이었다.원부의 증손 원송수(元松壽)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정당 문학(政堂文學)이었다. 시호가 문정공(文定公)이다.원관의 현손 원민생(元閔生)벼슬이 이조 판서(吏曹判書)였다. 시호가 양도공(襄悼公)이다.

원유염(元惟琰)한 파를 이루었다.9세손 원호(元昊)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직제학(直提學)이었다. 시호가 정간공(貞簡公)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다.원호(元昊)의 조카 원효연(元孝然)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예조 판서(禮曹判書)였으며, 공신으로서 원성군(原城君)에 봉해졌다. 시호가 문정공(文靖公)이다.원유염(元惟琰)14세손 원호(元豪)무과 출신으로 벼슬이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였다. 시호가 충장공(忠莊公)으로 충사(忠祠)에 배향되었다.원호의 아들 원유남(元裕男)무과 출신으로 벼슬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였으며, 공신으로서 원계군(原溪君)에 봉해졌다. 시호가 충숙공(忠肅公)이다.원유남의 아들 원두표(元斗杓)벼슬이 좌의정(左議政)이었으며, 공신으로서 원평 부원군(原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가 충익공(忠翼公)이다.원두표의 손자 원몽린(元夢麟)효종조(孝宗朝)의 부마(駙馬)로서 흥평위(興平尉)에 봉해졌다. 시호가 효헌공(孝憲公)이다.원몽린의 손자 원경하(元景夏)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이조 판서였다. 시호가 충문공(忠文公)이다.원경하의 아들 원인손(元仁孫)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우의정(右議政)이었다.원두표(元斗杓)의 현손 원경순(元景淳)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예조 판서(禮曹判書)였다. 시호가 정헌공(正獻公)이다.

원윤창(元允昌)국자감 진사(國子監進士)였는데, 한 파를 이루었다.6세손 원충갑(元冲甲)충숙왕(忠肅王) 때 광국 공신(匡國功臣)으로서 벼슬이 응양군 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었다. 시호가 충숙공(忠肅公)인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원충갑의 증손 원숙(元肅)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이조 참판(吏曹參判)이었다.

원극부(元克富)호장(戶長)이었는데, 한 파를 이루었다.6세손 원천석(元天錫)국자감 진사(國子監進士)였는데, 서원에 배향되었다

댓글목록

푸른바위님의 댓글

푸른바위 작성일

* 한문 원문(原文, 이미지)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증보문헌비고, 동국문헌비고에 대한 설명을 정리한 파일을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푸른바위님의 댓글

푸른바위 작성일

* 다운로드 하셔서 귀하의 글에 인용하실 때는 글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혀 기록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지적재산권에 관하여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종사연구님의 댓글

종사연구 작성일

* 문헌비고에 실린 삼사우윤 응양상장군공(휘 충갑)의 6代祖인 휘 윤창(元允昌) 공에 대해서 원성백계 족보의 계대 기록에 보이지 않네요. 좀 더 살펴봐야 겠네요.
* 한편 운곡계에서는 호장 휘 극부(克富) 공을 운곡공(휘 천석)의 6대조로 계대를 이었음을 운곡공계 족보에서 확인할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