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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승(家乘)에 전하는 관란공(觀瀾公)의 「치악산제명록 서雉嶽山題名錄 序」는 뒷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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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종사연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7-18 00:07 조회3,215회 댓글1건

본문

, 사실입니다

  즉 우리 가승(原本)23張 外面을 보면 以下 缺이라 하여 뒷부분이 없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하여 관란유고에서 그 글을 살펴보니 거기엔 가승에 없는 부분이 75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가승을 다시 내거나 관련 책을 낼 때엔 제명록 서의 완문(完文)을 기록해야 겠습니다.


    2021. 7. 17. 제헌절 저녁에

   종사연구위원회 부위원장 대연 돈수(頓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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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연구님의 댓글

no_profile 종사연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題名錄 序>
元公 觀瀾 首之。次者趙公。旅漁溪 次者李公。秀亨桃村 而姓名之下。各以別號標之。下方題以景泰年三月旣望。書于雉嶽立石云。而年上缺一字。訥翁李公光庭之定以爲六臣就死之際。未知何所考也。然以此爲據。則七年丙子矣。夫石之爲物。終古不泐。其立者挺然不伏。三君子題名。必於是。不以他人間之。其亦有取於石歟。雉卽原之鎭山。而原固元公所居之鄕也。方其携手登臨。藉草鼎坐。西山之逸詩可和。中流之楚辭可詠也。撫其跡而想其心。有不傷心隕涕者乎。
 <以下 缺>

<이하는 우리 [가승]에는 없고, [관란유고] 권2에는 있는 부분입니다.>
噫。自當時觀之。鐵其卷而金其樻者。輝煌震耀。何趐山阿片石。
而霜降水落。百年論定。人之摩挲而咨嗟者。在此而不在彼矣。余按端宗初年癸酉。
元公以集賢殿直提學。謝病歸。又四年而六臣死。  參判 睦萬中。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