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판공(휘 仲稑, 11世)의 여주 장암리 시거비와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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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사연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2-23 00:47 조회2,827회 댓글2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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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原文】
原州元氏 侍中公系 贈 參判公(휘 仲稑) 長岩里 始居碑文
이곳 驪州郡 北內面 長岩里는 옛 江原道 原州 땅으로 우리의 中始祖이신 贈 嘉善大夫 兵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事 行 禦侮將軍 忠武衛 副司直 諱 仲稑께서 西紀 一四五0年 傾 처음으로 山多谷에 定住하신 後 五百四十 餘年 間 二十 餘 代가 世世로 仍居하며 繁榮을 누려 온 吾元의 吉地이며 參判公 후로 累代의 列先祖께서 遺葬하신 遺緖 깊은 우리의 聖地이다.
參判公은 高麗朝 文科 右侍郞 諡 貞肅 諱 益謙을 始祖로 하는 原州元氏 侍中公系이시며 祖考는 贈 純忠補祚功臣 正憲大夫 吏曹判書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 經筵春秋館事 兼 成均館大司成 原山君 諱 滉이시며 考는 陰城縣監 贈 嘉善大夫 兵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事 諱 孝而이시고 妣 贈 貞夫人 李氏는 載寧 李布의 따님이시다.
局內의 勝景을 俯仰하건대 北에서 달려온 長嶺이 南쪽 끝에서 屹立한 蘇達山을 主峯으로 하여 浩浩長遠하게 西쪽으로 뻗어내린 秀麗한 丘陵들은 賜牌地內에 花場沃畓을 展開하여 年年이 豊年을 謳歌하고 西쪽 案山을 擁抱하며 淸淸히 흐르는 錦塘川은 楊柳의 翠碧을 左右로 映帶하여 花蝶이 咸集하고 四時로 探勝遊客이 不絶하니 可히 錦繡의 勝地이라 안으로는 淸雅한 琴書의 韻致가 가득하고 代代로 英俊한 子孫들이 和睦昌盛하며 밖으로는 勝地의 陽德이 亨通하여 忠孝로써 民心을 大得하고 三公六卿의 班列에 올라 그 功勳이 竹帛에 燦然하니 이는 參判公의 遺德이 猶存함이요 列先祖의 加護와 陰德이라 아니할 수 있으리오.
天地間에 千枝萬葉으로 갈라져 生命을 享有하는 子孫들은 뿌리를 같이하는 一氣同體인 宗親이거늘 敦睦과 孝悌의 義를 다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들은 先祖의 遺德을 追慕하고 遺業을 이어받아 힘써 協同勤勉하여 보다 아름다운 結實을 後世에 물려주어야 할 莫重한 責務를 지녔으니 溫和하게 心性을 修養하고 天理를 順守하며 時勢와 더불어 謙讓하고 慈愛하며 綱常의 義를 遵守하고 百代千載에 이르기까지 友愛를 다져 報恩의 孝를 다하고자 다짐하면서 蘇岩 俊喜 蒼岩 千喜 打巖 鍾勳 등의 發意로 宗中이 뜻을 합하여 이에 參判公 始居碑를 建立하고 아울러 永世敦睦과 繁榮을 당부하는 우리의 뜻을 後世에 傳하는 바다.
十七代孫 鍾悳 謹撰
十七代孫 鍾極 謹書
西紀 一九九二年 壬申 四月 日 參判公 後孫 一同 建立
【한글 풀이】
원주원씨 시중공계 증 참판공(휘 중륙) 장암리 시거비문
(原州元氏 侍中公系 贈 參判公(휘 仲稑) 長岩里 始居碑文)
정리 및 한글풀이 : 대연, 2023. 2. 22.
이곳 여주군 북내면 장암리는 옛 강원도 원주 땅으로 우리의 중시조이신 가선대부의 품계와 병조참판과 의금부 부사의 직책을 사후(死後)에 증직(贈職) 받으신 어모장군의 품계로 품계보다 낮은 직급의 충무위 부사직의 직책을 담당하셨던 휘 중륙(仲稑) 선조님께서 서기 1450년 무렵 처음으로 산다곡(山多谷)에 터를 잡고 사셨던 이후로 500여 년 동안 20여 세대가 대대로 내리 살며 번영을 누려 온 우리 원문(元門)의 길지(吉地)이며 참판공 이후로 여러 세대의 선조님들께서 묻혀 계신 유서(遺緖) 깊은 우리의 성지(聖地)이다.
참판공께서는 고려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시고 우시랑(右侍郞)을 지내셨으며 돌아가신 후에 정숙(貞肅)이란 시호(諡號)를 임금으로부터 받으신 휘 익겸(益謙) 선조님을 시조로 하는 원주원씨 시중공계이시며, 할아버지는 순충보조공신의 칭호와 정헌대부의 품계를 받으시고 이조판서,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 경연춘추관사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시고 원산군(原山君)에 봉군(封君)되신 휘 황(滉)이시며, 고(考, 돌아가신 아버지)는 음성현감(陰城縣監)을 지내시고 가선대부의 품계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신 휘 효이(孝而)이시고, 비(妣, 돌아가신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신 이씨(李氏)는 재령(載寧) 이포(李布)의 따님이시다.
공은 사형제(四兄弟) 중 삼남(三男)으로 출생하셨으며 배위(配位)는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신 여흥민씨(驪興閔氏)이시다.
국내(局內, 묘지 구역)의 승경(勝景, 뛰어난 경치)을 앙부(仰俯)하건대 북쪽에서 달려온 장령(長嶺)이 남쪽 끝에서 흘립(屹立)한 소달산(蘇達山)을 주봉(主峯)으로 하여 호호장원(浩浩長遠)하게 西쪽으로 뻗어내린 수려(秀麗)한 구릉(丘陵)들은 사패지(賜牌地) 내(內)에 화장옥답(花場沃畓) 안산(案山)을 전개(展開)하여 연년(年年)이 풍년(豊年)을 구가(謳歌)하고 西쪽 안산(案山)을 옹포(擁抱)하며 청청(淸淸)히 흐르는 금당천(錦塘川)은 버드나무(楊柳)의 청록빛(翠碧)을 좌우로 허리띠처럼 늘어뜨려(映帶) 벌나비(花蝶)가 모여들고(咸集) 철마다(四時) 경승지(景勝地)를 찾아다니는 구경꾼(探勝遊客)이 끊이지 않으니(不絶하니) 可히 수놓은 비단(錦繡)과 같은 경승지(勝地)라 안으로는 청아(淸雅)한 금서(琴書)의 운치(韻致)가 가득하고 대대(代代)로 영민하고 준수한(英俊한) 자손(子孫)들이 화목창성(和睦昌盛)하며 밖으로는 승지(勝地)의 밝은 기운[陽德]이 탈 없이 두루 통하여[亨通] 충효(忠孝)로써 민심(民心)을 크게 얻고[大得하고] 정승과 판서[三公六卿]의 반열(班列)에 올라 그 공훈(功勳)이 죽백(竹帛, 즉 역사서)에 찬연(燦然)하니, 이는 참판공(仲稑)의 끼치신 덕[遺德]이 유존(猶存)함이요 여러 선조님들[列先祖]의 가호(加護)와 음덕(陰德)이라 아니할 수 있으리오.
천지간(天地間)에 천 갈래 만 갈래[千枝萬葉]으로 갈라져 생명(生命)을 누리는[享有하는] 자손(子孫)들은 뿌리를 같이하는 일기동체(一氣同體)인 종친(宗親)이거늘 돈목(敦睦)과 효제(孝悌)의 의(義)를 다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들은 선조(先祖)의 유덕(遺德)을 추모(追慕)하고 유업(遺業)을 이어받아 힘써 협동근면(協同勤勉)하여 보다 아름다운 결실(結實)을 후세(後世)에 물려주어야 할 막중(莫重)한 책무(責務)를 지녔으니 온화(溫和)하게 심성(心性)을 수양(修養)하고 천리(天理)를 순수(順守)하며 시세(時勢)와 더불어 겸양(謙讓)하고 자애(慈愛)하며 강상(綱常)의 의(義)를 준수(遵守)하고 백대천재(百代千載)에 이르기까지 우애(友愛)를 다져 보은(報恩)의 효(孝)를 다하고자 다짐하면서 소암(蘇岩) 준희(俊喜) 창암(蒼岩) 천희(千喜) 타암(打岩) 종훈(鍾勳) 등(等)의 발의(發意)로 종중(宗中)이 뜻을 합하여 이에 참판공 시거비(始居碑)를 건립(建立)하고 아울러 영세돈목(永世敦睦)과 번영(繁榮)을 당부하는 우리의 뜻을 후세(後世) 전(轉)하는 바다.
十七代孫 鍾悳 謹撰
十七代孫 鍾克 謹書
西紀 一九九二年 壬申 四月 日 參判公 後孫 一同 建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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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연구님의 댓글
종사연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원문(原文)의 어려운 한자나 단어 등은 한글 풀이에서 주(註)를 달아 풀이하였으나 이곳에 바로 올리면 함께 따라오지 않기에 한글에서 작업하여 첨부파일로 올렸습니다.
또한 사진 파일도 함께 올렸으니 보시고 싶은 경우엔 위의 첨부파일을 클릭하셔서 다운 받으신 후에 보시면 되겠습니다. 휴대폰에서는 한글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어야 보실 수 있겠습니다.
종사연구님의 댓글
종사연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시거비(始居碑)와 소산사(蘇山祠)가 모두 보이는 전경(全景)으로 사진을 찍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그러지 못했네요. 비문(碑文) 전산 입력을 하기 위한 상황에서 급하게 사진을 찍다 보니 전경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음 번엔 꼭 전체 배경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