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중공계에서 6형제 문과 등과와 5형제 무과 등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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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사와족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4-02 23:26 조회1,408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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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원주원씨 시중공계에서 6형제 문과 등과와 5형제 무과 등과가 있었으며 그 기록이 조선왕조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기록에 있네요. 자랑스런 우리 선조님의 기록입니다.
1. 문과 6형제 등과에 조정에서 예조정랑을 원주에 보내 조상의 묘에 제사(治祭)
하고, 무과 5형제 등과에는 조정에서 세사미(歲賜米)를 내리다(賜給).
가. 6형제 문과 등과 :
16世휘 해굉(海宏) 공의 아들 6형제(계사보 2-351면) 음성공 후 사직공파
휘 해굉 공은 1612(光海 4, 壬子)年 生員.
1男 휘 즙楫(1609~ 1671) 字 汝濟. 1646年 丙戌 式年試 文科
2男 휘 식植(1611~ 1665) 字 汝厚. 1642年 壬午 式年試 文科
3男 휘 격格(1615~ 1693) 字 汝正. 1651年 辛卯 式年試 文科
4男 휘 적樀(1618~ 1668) 字 汝久. 1654年 甲午 式年試 文科
5男 휘 철㯙(1624~ 1681) 字 汝方, 1663年 癸卯 式年試 文科
6男 휘 절梲(1627~ 1681) 字 汝建, 異名 元極, 1660年 庚子 式年試 文科
➜ 승정원일기 1660(현종 1)년 11월 24일 을해 4/13 기사
∎ 원문 : 禮曹正郞崔文活五子登科, 元海宏致祭原州地出去。
* 번역 : 예조정랑 최문활崔文活이 다섯 아들이 (모두) 등과한 원해굉(元海宏)의 치제(致祭)를 위해 原州로
나갔다.
나. 5형제 무과 등과 :
휘 최진(最鎭, 1743~ 1809)의 아들 5형제가 무과에 급제하다.
계사보(인터넷) 2권 1440면, 21세 문정공후 첨추공파, 여주시 북내면 가정리
아들 永龜ㆍ永麟ㆍ永象ㆍ永駿ㆍ永麒 무과 등제
1男 휘 영귀(永龜 1760~ 1818) 字 子範. 武科 合格 時期 不詳.
2男 휘 영린[永麟, 1766(영조 42)年 丙戌生], 字 子定. 무과 1790(正祖 14 庚戌)年 增廣試 丙科 14위(22/311)
3男 휘 영기[永麒 1770(영조 46)年 庚寅生], 字 子敬. 무과 1800(正祖 24, 庚申)年 別試 丙科 22위(26/924)
4男 휘 영상[永象, 1774(영조 50)年 甲午生], 字 子彦. 무과 1795(正祖 19 乙卯)年 式年試 丙科 2위(12/202)
5男 휘 영준[永駿, 1777(正祖 1)年 丁酉 生], 字 子逸. 무과 1798(正祖 22年 戊午) 式年試 原榜 11위(14/429)
➟ 승정원일기 五子登科者 元最鎭에게 관직을 올려주는 가자(加資)
정조 22년 戊午(1798) 11월 17일
○ 좌의정 이병모가 아뢰기를,
“다섯 아들이 등과(登科)한 경우 그 아비에 대해서는 계본(啓本)으로 보고하여 가자하는 법이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실려 있습니다. 유학 원최진의 아들 원영귀(元永龜)ㆍ원영린(元永麟)ㆍ원영상(元永象)ㆍ원영준(元永駿)은 모두 무과에 등제하였고 원영기(元永麒)는 또 무과에 곧바로 응시하는 은전(恩典)을 받았습니다. 그 아비 원최진에게 법전대로 가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여, 그대로 따랐다.
[DCI]ITKC_IT_V0_A22_11A_17A_00030_2015_168_XML ⓒ 한국고전번역원 하지영 (역) 2015.
➟ 승정원일기 정조 22년 무오(1798) 12월 20일
[DCI]ITKC_IT_V0_A22_12A_20A_00230_2015_169_XML
○ 예조 판서 김재찬(金載瓚)이 아뢰기를,
“오위장 원최진은 아들 다섯이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는 이유로 법전에 따라 자급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또 본조에 정장(呈狀)하여 ‘아들 다섯이 모두 과거에 급제한 경우, 세시(歲時 설)에 쌀을 사급하는 것도 법전에 있으니 규례에 따라 계하(啓下)하소서.’라고 하기에 《대전통편》을 가져다 상고하니, 아들 다섯이 모두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 대한 세사미(歲賜米)의 일이 과연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원최진의 세사미를 법전에 따라 거행하라는 뜻으로 호조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여, 그대로 따랐다.
ⓒ 한국고전번역원 김명곤 (역) 2015.
➟ 맏형 영귀는 1790. 7. 4. 고성현령(固城縣令)에 임명되었으며, 막내동생 영준(永駿, 1777~ 1815)은 1813. 7. 28. 고성현령(固城縣令)에 임명되고, 1815. 4. 16. 재임 중 사망하다.
좀 더 깊이 있는 자료조사가 이어져야 합니다. 특히나 5형제 무과 급제의 맏형이신 휘 영귀(英龜) 선조님의 무과 급제 시기는 아직 찾지 못했네요. 그리고 막냇동생 휘 영준 공께서는 고성현령으로 재임 중에 돌아가신 일도 있네요.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2023. 4. 2. 종사연구위원회 부위원장 대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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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와족보님의 댓글
종사와족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세기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의 실학파 거두 연암 박지원의 제자이기도 했던 북학파 실학자 이덕무가 지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의 권 49에 실린 [耳目口心書2]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3代가 장원으로 급제한 것은, 김천령(金千齡)ㆍ김만균(金萬鈞)ㆍ김경원(金慶元)이고,
형제가 장원한 것은, 유자한(柳自漢)ㆍ유자빈(柳自濱), 민정중(閔鼎重)ㆍ민시중(閔蓍重), 유명천(柳命天)ㆍ유명현(柳命賢), 오원(吳瑗)ㆍ오찬(吳瓚)이다.
6형제가 등과(登科)했다. 원해굉(元海宏)의 아들 식(植)은 인조(仁祖) 임오년에 등과하고, 집(楫)은 인조 을유년에 등과하고, 적(樀)은 효종 갑오년에 등과하고, 격(格)은 효종 신묘년에 등과하고, 절(梲)은 현종 정유년에 등과하고, 철(㯙)은 현종 계묘년에 등과했다.
[DCI]ITKC_BT_0577A_0490_000_0010_2000_008_X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