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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원주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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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석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16 21:21 조회3,3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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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原州) 원씨(元氏)의 본관(本貫) 역사

 

원주원씨의 본관 "원주(原州)"는 강원도 원주를 말함이다. 본관(本貫)이 처음에는 시조의 세거지(世居地)인 고구려때 평원군(平原郡지금의 원주)이었다가, 신라때 북원경(北原京) 변경되었다. 고려 태조23년 원주(原州) 로 지명이 되었다. 이후로도 몇 번의 지명 변경이 되었으나 고려 공민왕2년에 원주목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까지 원주(原州) 에 이르러 원주(原州)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원주원씨 시중공계는 시조 익겸(益謙)과 중흥조 시중공 홍필(侍中公 弘弼)을 축으로 하는 단일본이다.

동성을 쓰면서도 아직 역사적 고증이 끝나지 않아 본관 합성을 못하고 있는 원주원씨 원성백계 와 원주 원씨 운곡계 도 모두 본관(本貫)을 원주(原州) 로 하고 있다. 여러번 3계에서 대동보를 논의 하였으나 좀더 고증이 필요하다고 후일를 기약하고 있다.

 

<원주(原州)의 변천 역사>

원주는 고대 진한(辰韓)의 발생지였으며 한강이남의 중부지방은 백제,고 구려, 신라 등 삼국사이에 격전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5세기 중엽 장수왕때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그 세력을 남으로 뻗쳐서 백제의 왕도(王都)인 한성(지금 경기광주)을 함락시켰다. 그후부 터 한강 유역은 전부 고구려가 차지하게 되어 이때부터 평원군(平原郡) 이라 하였다.

그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여 9(九州) 5소경(五小京)제도를 설치 하고 제도를 정비할때 북원경(北原京)으로 부르게 되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됨에 따라 한주(漢州),명주(冥州)등 고구려 남부를 차지하게 되면서 북원경은 고려에 편입되었다.

고려 태조 23(서기 940) 북원경을 폐하고 원주군(原州郡)으로 개칭 하였다.

조선시대 태조4(1395)八道制(팔도제) 실시와 함께 강원감영이 설치되면서 처음으로 강원도(江原道)라는 도명(道名)이 생기게 되었으며 강원도를 통할하는 政治,行政,文化,軍事의 중심지로서 큰 역할을 담당 하는 강원 관찰부가 원주에 설치되었다가 숙종 9(1683) 원주의 한 여인이 자기 남편을 도끼로 찍어 죽인 불상사가 일어났으며 원주사람 정무중(鄭茂中)이 모반(謀反)사건을 일으켜 지명이 학성현(鶴城縣)으로 강등되었다가 영조 14(1738)에 다시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 되었 다.

그후 일본의 침략기에 조선총독부의 설치로 크고 작은면과 촌을 정비하 면서 비로소 원주군(原州郡)으로 확정되었다가 1955년 원주시(原州市) 로 승격되고 군부(郡部)는 원성군(原城郡)으로 되었다가 1995년 지방자 치 기준에 의거 원주시와 원성군을 통합하면서 통합 원주시(原州市)가 되었다.

 

<원주지명의 연혁>

평원군(平原郡) : 고구려 장수왕 57

북원경(北原京) : 신라 제30대 문무왕 6(서기666)

원주(原州) : 고려 태조 23(서기940)

지주사(知州事) : 고려 제 8대 현종 9(1018)

일신현(一新縣) : 고려제23대고종 46(1259)송밀의 반역사건으로 격하됨

정원도호부(鄭護府):고려원종10(1269)공신 임유무(林惟茂)의 외향

이라 다시 승격됨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고려충렬왕17(1291)哈丹族;합단족(거란 족)의 침입때 원충갑(영원산성)勝戰(승전의)()으로 불리게 됨

원주목(原州牧) : 고려 충렬왕 34(1308)승격됨

성안부(成安府) : 고려26대충선왕2(1310)부로격하됨

원주목(原州牧) : 고려31대 공민왕2(1353)에 남치악산(南雉岳山)

안태(安胎) (세자의태를 묻음)로 다시 승격됨

원주현() :1683(숙종9)강등됨

원주목 : 1702년 목()으로 환원됨

원주현 : 1728(영조4)현으로 강등

원주목 : 1737(영조13) 목으로 환원

원주군 : 1895(고종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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