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三系) 합보(合譜)≫를 불태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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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三系) 합보(合譜)≫를 불태운 이유?
1985年 삼계(三系) 합보(合譜)를 만들 당시의 초고(草稿)에 보면
①유염(惟琰)을 <14세 시중공계(侍中公系) 파조(派祖)>라고 기록해 두었다.
②익겸(益謙)을 <중조(中祖)>라고 기록해 두었다.
시중공계(侍中公系)에는 엄연히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族譜)≫가 있는데 이 족보(族譜)의 기록을 무시하고 계대(繼代)를 기록한데 대하여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확실한 근거도 없이 적당히 <끼워넣기식>으로 족보를 만든다면 사문난종(詐文亂宗-글을 속여서 종당을 어지럽히고)하고 욕급선조(辱及先祖-그 욕됨이 조상에게 미침)할 수 우려가 있다고 한다.
창하공(蒼霞公)이 여러 종친과 협의하여 고심하여 기록해둔 <一世 始祖 元益謙>이라는 ≪乙未譜-1739≫의 기록을 뒤집어 엎는 <一四世 中祖 益謙>으로 기록한 것은 상당히 무리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함부로 족보(族譜)를 고친데 대하여 그 당시 시중공계(侍中公系) 종원(宗員)들이 분분(紛紛)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합보(合譜)≫를 불태워버린 것은 원성백계(原城伯系)의 항의(抗議) 때문이 아니라, 시중공계(侍中公系) 종원(宗員)의 항의(抗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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