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원주 사족과 원주의 위상(원주원씨, 원주이씨를 중심으로, 남상권, 운곡논총19, 2026. 2. 운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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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원주 사족과 원주의 위상원주원씨, 원주이씨를 중심으로, 남상권, 운곡논총19, 2026. 2. 운곡학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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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원주 사족과 원주의 위상-원주원씨, 원주이씨를 중심으로], 남상권, 운곡논총19, 운곡학회, 2026. 2.
김천대학교 남상권 교수의 최근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조선 전기 원주(原州)의 토착(土着) 성관(姓貫)인 원주원씨(原州元氏), 원주이씨(原州李氏) 가문이 사족(士族)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으며, 그 과정을 통해 원주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확인하는 결과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원주는 고려 건국 때부터 개국에 참여한 가문이 존재하였고, 고려말까지 원주의 지배층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가문에서 일부는 상경종사(上京從事)하여 원주의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습니다. 원간섭기(元干涉期)의 원주의 원부(元傅) 가문이 대를 이어가며 왕실의 측근세력으로 활동하며 명망을 높인 것도 그 하나입니다.
이들 가문은 당시의 유력 지배 가문과 혈연관계를 맺었고, 이 관계는 고려 왕실과 조선 왕실에까지 닿았다. 이들은 재경관료(在京官僚)로 활동하면서도 출신지인 원주지역과의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토착 성관(姓貫)으로 오랫동안 향리층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유대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원주는 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향리 출신이 사족으로 일찍부터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충숙공(휘 충갑), 이송견, 종부시령공(휘 광명), 판종부시사공(휘 광덕), 휘 윤적(운곡공 부친) 가문의 후손들로이들은 누대에 걸쳐 혈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차분히 살펴보시면 우리 원씨의 고려말 조선초기의 역사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2026. 3. 11. 대연(문학박사) 올림.
이 가문의 성장은 출사로 이어져 중앙의 유력 가문으로 성장하기도 하였고, 동시에 재지로 돌아와서 원주의 문풍과 정체성을 발전시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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