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문헌비고]와 그 뿌리인 [동국문헌비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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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사연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5-16 20:38 조회3,79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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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해당 부분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1.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1770년에 간행된 백과전서식 사전. 100권 40책.
* 1769년에 왕명으로 시작된 편찬 사업은 서명응(徐命膺)·채제공(蔡濟恭)·서호수(徐浩修)·신경준(申景濬) 등이 주도해, 반년여 만에 상위(象緯)·여지(輿地)·예(禮)·악(樂)·병(兵)·형(刑)·전부(田賦)·시적(市糴)·선거(選擧)·재용(財用)·호구(戶口)·학교(學校)·직관(職官) 등 총 13고 100권으로 완성되어, 1770년 8월에 인쇄되었다.
2.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동국문헌비고]가 짧은 기간에 이루어져 체재가 서로 어긋나거나 사실의 소략과 착오 등이 많아, 1782년(정조 6) 왕명으로 재 편찬에 들어갔다. 당시 박학강기(博學强記)로 이름난 이만운(李萬運)을 기용해 진행된 사업은 1790년에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정조 즉위 후의 사실이 많이 빠져 계속 보완·증보의 작업이 이어졌다. 증보 사업은 1797년에 이만운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서명응의 손자이자 호수의 아들인 유구(有榘)도 참여했다. 이후에도 이만운의 아들 유준(儒準)의 보완 작업이 따랐으나, 기본 골격은 앞에서 이미 갖추어진 대로였음.
* 『증정동국문헌비고(增訂東國文獻備考)』 또는 『증보동국문헌비고』로도 불리며, 앞의 13고에 물이(物異)·궁실(宮室)·왕계(王系)·씨족(氏族)·조빙(朝聘)·시호(諡號)·예문(藝文) 등 7고를 더해 총 20고 146권을 이루었으나 간행되지는 않다가 갑오경장으로 문물제도가 크게 바뀌어 이를 반영시키기 위해 『증정동국문헌비고』를 개찬한 것임.
* 1903년 1월 법무국장 김석규(金錫圭)의 건의가 채택되어, 홍문관 안에 찬집소(纂輯所)를 두고 박용대(朴容大)·조정구(趙鼎九)·김교헌(金敎獻)·김택영(金澤榮)·장지연(張志淵) 등 33인이 찬집을, 박제순(朴齊純) 등 17인이 교정을, 한창수(韓昌洙) 등 9인이 감인(監印)을, 김영한(金榮漢) 등 3인이 인쇄를 각각 맡아 5년 만에 완성시킴.
* 개찬(改撰)의 결과 250권으로 양은 늘어났으나, 분류는 줄어들어 상위(12권)·여지(27권)·제계(帝系, 14권)·예(36권)·악(19권)·병(10권)·형(14권)·전부(13권)·재용(7권)·호구(2권)·시적(8권)·교빙(交聘, 13권)·선거(18권)·학교(12권)·직관(28권)·예문(9권) 등의 16고로 이뤄짐.
결국 [증보문헌비고]는 몇 사람이 짧은 시간 동안의 작업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200여 년 동안 세대를 이어온 수 십여 명이 노력한 결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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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이 글을 올린 까닭은 공적 문서에 기록된 우리 원주원씨에 대한 우리 종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종파적 의도나 목적이 없이 순수한 의도임을 밝힙니다.